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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는 유방을 절제해야 했을까?

입력 2013.05.21 00:00
  • 황종하·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전문의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이자 브래드 피트의 부인인 안젤리나 졸리가 양측 유방을 절제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했더니 아내는 눈을 흘기며 웃는다.

건강미 넘치는 섹시 여전사 이미지인 그녀가 그런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충격적인 이야깃거리로만 다루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했고 본인의 유전자 검사상 BRCA(유전성으로 유방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어 예방적으로 했다고 한다. 유방암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 유전병, 염색체와 유전자 이상으로 생겨

유전병은 말 그대로 유전이 되는 병을 뜻한다. 비교적 흔한 질병으로는 다운 증후군이 있다. 피가 멈추지 않는 혈우병 같은 것도 있다. 암, 당뇨, 고혈압 등은 유전병일까 아닐까. 흔히 부모가 특정 암에 걸려 돌아가셨을 때 자신도 같은 암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당뇨도 유전적 요소가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암이나 당뇨를 유전병이라고 하면 왠지 어색하다.

다운 증후군은 염색체 21번이 정상보다 하나 더 있는 것이다. 이를 염색체의 숫자의 이상이라고 한다. 염색체 숫자나 구조에 이상이 경우 심각한 기형을 초래하며 많은 경우 유산이 된다. 하나의 염색체에는 수많은 유전자가 있다.

유전자는 아데닌, 구아닌, 티민, 시토신으로 구성된 긴 염기 서열인데 순서에 문제가 생기면 질병이 발생한다. 이를 단일 유전자 이상에 의한 유전병이라고 하는데 혈우병이 이에 해당한다. 유전하면 멘델의 유전 법칙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에 해당되는 것이 단일 유전자 이상에 의한 유전병이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전병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이 범주가 되겠다.

암이나 당뇨 등은 여러 가지 유전자와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유전적 성향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이를 유전병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특정 유전자가 다른 형태에 비하여 암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 것은 유전자의 차이에 따라 피부색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특성일 뿐이다. 암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 유전자가 있다고 해도 암이 발병하려면 다른 유전자와 상호 작용에 더하여 환경적인 요인도 중요하다.

◆ BRCA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암 발병, 30대 이후 많아

고민하는여자고민하는여자

암을 유발하는 일부 유전자는 멘델의 유전 법칙을 따른다. 이쯤 되면 유전적 성향이 아닌 유전병으로 보아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난소암과 유방암을 유발하는 BRCA 유전자이다. 그것도 혈우병과 같이 성염색체 열성 유전도 아니고 상염색체 우성 유전을 한다. 혈우병의 경우 어머니가 보인자는 아들은 두 명 중에 한 명에서 혈우병이 되고 딸은 두 명 중에 한 명이 보인자가 된다.

즉, 딸은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반면 BRCA에 돌연변이가 있는 엄마에게 태어난 딸은 50%에서는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아버지까지 BRCA에 돌연변이가 있다면 태어난 딸의 75%에서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혈우병 유전자를 가졌다면 혈우병이 생기는 것처럼 돌연변이 BRCA 유전자를 가졌다면 난소암이나 유방암이 생기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BRCA 유전자는 1, 2가 있는데 유전자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유방암은 약 70%, 난소암은 약 30%에서만 생긴다. 왜 100%에서 생기지 않을 것일까.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어도 발현이 전부 되지 않고 일부만 발현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투과율이라고 한다. 단순히 돌연변이 유전자만 있는 것으로 부족하고 추가적인 요인이 있어야 병이 발현되는 것이다. 투과율은 나이, 성별 등의 영향을 받는다. BRCA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암은 대부분 30대 이후에 발병하게 된다.

100% 발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약 70%에서 유방암이, 약 30%에서 난소암이 생긴다고 하면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룰 것이다. BRCA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6 개월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유방암 난소암 검진을 받는 것이 기본이다.

유방암 검사는 일반적으로 유방촬영과 유방초음파 정도만 하지만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자기공명 영상까지 같이하면 좋다. 난소암의 경우 질초음파 검사와 종양 표지자 검사를 하는데 정기 검진을 받아도 조기 발견이 힘들다. 피임약이 난소암 예방에 효과적이므로 검진과 더불어 피임약 복용을 권장한다. 대개 병의 발현은 30대 이후이므로 결혼 전에는 피임약을 복용하다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은 후에는 예방적으로 양측 난소, 난관을 절제할 수 있다.

◆ BRCA 돌연변이 발견되면 절제술 해야할까?

유방암캠페인사진유방암캠페인사진

BRCA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혈액검사를 하면 된다. 피만 뽑으면 되니 비교적 간단하게 할 수 있지만, 검사 비용이 상당히 비싸다. 모든 여성이 BRCA 유전자 검사를 할 필요는 없다. 어머니가 난소암이나 유방암인 경우, 일반적으로 가계 내에 두 명 이상의 난소암이나 유방암 환자가 있는 경우 등에서 유전 상담을 한 후 BRCA 유전자 검사를 고려해 볼 수 있다.

혈액검사를 통해 BRCA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면 예방적으로 난소 절제술 또는 유방 절제술 (아니면 둘 다) 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100%에서 발현이 된다면 예방적으로 하는 것에 맞다. 병이 걸리기 전에 미리 절제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문제는 일부에서는 병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절제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감에 걸릴 가능성이 적지만 예방을 위해 독감 백신을 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 돌연변이 유전자 양상, 지역·인종별로 달라

BRCA 돌연변이의 유전자의 양상은 지역이나 인종에 따라서 발생 위치, 보유자의 빈도 등에 있어 차이가 난다. 나라마다 자국민의 특성을 고려하여 검사하는 방법도 다르다. 국내의 경우 BRCA 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데 외국의 자료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은 부분도 있다. BRCA 유전자 검사를 권유하고 의미를 설명해주는 것은 의사가 할 일이지만 죽을 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않겠다고 하면 그만인데 예방적 절제술을 하고 안 하고는 개인이 결정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의사들 사이에도 견해가 다르지만 예방적 유방 절제술이나 난소 절제술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의사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선진국은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권유하는 편인데 미국보다 유럽 쪽에서 더 많이 시행한다. 유방 절제술을 받아도 유방암이 생기는 경우가 있으며 수술 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고려하면 효과가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난소 절제술의 경우 상대적으로 고통이 적고 밖에서 보이는 부분도 아니므로 심리적으로도 타격이 작을 수 있다. 자녀를 다 낳은 경우라면 부담감이 적다. 난소를 절제하면 폐경이 되겠지만 여성호르몬을 보충해 줄 수도 있다. 난소암이 생기지 않는 것에 더하여 유방암의 발생도 50% 이상 줄어든다. 난소암은 조기 발견이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유방암은 자가 검진 및 정기 검진을 통해 조기 발견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인종, 지역, BRCA 종류, 나이, 개인적 성향 등 고려해야 하니 어떤 것이 최선이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이 아닌 난소를 절제했으면 어땠을까’ 산부인과 의사로서 드는 생각이다.

<글 = 동원산부인과 황종하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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