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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의사 환자간의 믿음

입력 2013.03.10 00:00
  • 이재만·연세본정형외과의원 전문의

허리가 아프고 좌측 다리가 저리고 걸을 때 증세가 심해지는 것을 호소하는 환자분에게 척추 신경 성형술을 권유하였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와 시술방법과 효과 합병증 등을 설명하고 시술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얼마 후, 환자 보호자를 병원 복도에서 만났을 때 그분은 나에게 “그 시술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라고 물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 시술하지 말라고 합니다.” 라고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
매스컴을 통해서 “경막외 척추 신경 성형술이 효과가 어떻다” 라는 보도를 본 기억이 있다. 이제 의사로서 행하는 치료가 언론상에서 논쟁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 졌다.

병실에서환자와이야기나누는의료진병실에서환자와이야기나누는의료진

내가 의사가 되고 정형외과 전문의 척추분야 박사학위를 받아서 현재 많은 환자를 볼 수 있게 된 멘토가 되신 분은 시골의사였던 내 할아버지와 한의사인 내 외할아버지 이셨다. 우리 외조부께서는 한약을 지어 주실 때도 우선 한 첩을 지어주시고 드시게 한 뒤 다시 오게 하여 약의 효과를 살피시고 그제야 1주일, 한 달 약을 처방하셨다고 한다. 환자의 상황과 혹시 있을 수 있는 부작용 등에 대한 의사의 배려인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의 경우 위급한 상황에서는 돈을 받지도 않으셨다. 물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야기 일 수 있지만 그렇게 치료 받은 환자가 병이 나아서 나중에 외할아버지 돌아가신 뒤에도 찾아와 쌀 한 가마니를 놓고 가셨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항상 나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한마디로 우리 할아버지세대의 의사 분들은 환자를 내 가족처럼 위하는 마음이 절실하셨고, 또 그 처방을 따르는 환자들은 그 의사를 믿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오늘도 내 외래를 찾아오는 환자 중 일부는 진료받는 동안 나의 말을 매우 의심스럽게 듣고 검사하시고 오라는 말에 아무 말 없이 다른 병원으로 향한다. 또 뭐 한방병원에서는 허리 아픈데 특효가 있다면서 수개월의 한약을 환자에게 권유하기도 한다. 또 진료도 받기 전에 원무과에서 돈을 내거나 지불보증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의사가 환자를 치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짧은 정형외과 전문의로서의 지난 10여 년 환자분들을 돌이켜 보면, 치료 효과는 환자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나를 신뢰해 주는 마음에서 결정되었던 것 같다. 나는 생각한다, 환자를 치유하는 것은 믿음이고 상호 신뢰이다. 치료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의사 환자 상호간의 신뢰가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경막외 척추 신경 성형술의 효과에 대해서 언급된 기사를 보면서 “만약에 이 치료가 백해 무익하다면 그렇게 많은 병원에서 현재 그렇게 많은 시술이 시행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환자들에게도 종종 이 시술을 수행하면서 통증관리 면에서는 효과가 있는 것을 경험한다. 서로간의 불신이 만연하는 요즈음 환자에게 아픔을 덜어주는 노력과 함께 믿음 직한 의사가 될 수 있게 힘을 다 할 것을 다짐해 본다.

<글 = 사랑플러스병원 진료부장 이재만 (정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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