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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이 멸종한 이유는?

입력 2012.02.29 00:00
  • 김주현·HiDoc 전문의

공룡이 멸종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습니다.

지구가 오래전에 아주 커다란 운석과 충돌을 하면서 폭발에 의한 먼지와 수증기들이 대기를 덮고 태양 빛이 차단되어 빙하기가 찾아와서 공룡이 멸종되었다고 보통 말합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경을 깊이 공부하고 치료하는 재활의학과 의사 입장에서 보면 공룡이 멸종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재미있자고 쓰는 것이니까 오해는 마시기를…

공룡공룡

우리가 통증을 느끼는 이유는 몸의 곳곳에 분포한 통점이 자극을 받아서 통각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통점을 구성하는 세포의 세포막에는 채널이란 세포 소기관이 있는데, 인체의 한 부위가 손상되면 포타슘 이온, 세로토닌, 히스타민 등의 통각 유발물질이 만들어지며 이것들이 채널을 통해 세포의 안과 밖으로 오가면서 세포 사이에 다양한 신호를 전달하며 이때 통증 신호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통각 신경은 다른 감각 신경과 비교하면 매우 가늘어서 신호를 느리게 전달합니다. 좁은 길에서 자동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압각이나 촉각 등이 대략 초속 70m로 전달되는 데 비해 통각은 초속 0.5~30m 정도입니다. 만일 키가 30미터나 되는 공룡이 뜨거운 용암을 밟았거나 나무뿌리가 발바닥에 박히게 되면 공룡은 최대 1분 후에나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예전에 어떤 개그맨이 한 대 맞으면 한참 후에야 반응을 보이면서 “어, 아파!!” 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이 웃었었는데, 공룡이 마치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몸이 빠른 녀석이 뒤에서 한 대 때려서 상처를 입히고 나서 도망을 갈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이죠.

야생에서는 동물들이 상처를 입게 되면 아주 치명적입니다. 염증이 생기면 곪게 될 수 있고 통증으로 인해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니, 활동을 제대로 못 하게 되면 굶어 죽거나 염증이 파급되어 죽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공룡이 몸에 상처가 나면 병원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통증이 느끼게 되면 바로 피해서 상처를 최대한 적게 받게 해야 하는데 나무뿌리가 몸 속 깊이 박힌 후에야 통증을 느끼게 되면 몸은 이미 큰 상처를 받은 후일 테니까요.

통각 신경이 다른 감각 신경에 비해 가는 이유는 더 많이 배치되기 위해서입니다. 피부에는 1㎠당 약 200개의 통점이 촘촘히 분포하는데, 통각 신경이 굵다면 이렇게 많은 수의 통각 신경이 배치될 수 없고, 이렇게 빽빽이 배치돼야 아픈 부위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폐암과 간암이 늦게 발견되는 것도 폐와 간에 통점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통각 신경의 느린 속도는 촉각 신경이 보완하게 됩니다.

통증이 있을 때 대부분 촉각도 함께 오기 마련인데, 우리 몸은 경험을 통해 촉각에 반응해 통각의 느린 속도를 보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뾰족한 것에 닿았을 때 반사적으로 손을 뗀다든지, 등 뒤에서 누군가 건드리면 휙 돌아보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공룡은 몸이 워낙 커서 이 반사도 느렸을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통증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정도가 심하면 생명까지 위협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통증이 일어나는 여러 단계 중 한 부분을 차단하면 되는 약을 개발하였습니다. 그 중 가장 강력한 진통제인 모르핀은 척수나 뇌 같은 중추 신경에 직접 작용해서 통증을 완화합니다.

‘문 조절 이론(gate control theory)’이라는 통증을 막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이론은 굵은 촉각 신경으로 전달된 촉감이 가느다란 통각 신경으로 전달되는 통각을 억제한다는 것입니다. 즉 촉각이 세지면 통각 신경을 더 많이 방해하므로 통증을 덜 느끼게 되는데 물리치료실에서 사용하는 ‘경피성 전기 신경 자극(TENS)’은 촉각 신경에 전기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어 통각 신경을 억제해 통증을 덜 느끼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사실 우리 몸도 ‘엔도르핀’이라는 진통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엔도르핀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할 때 분비가 됩니다. 운동에 집중할 때 발목이 삔 것을 잊는다든지, 전쟁터에서 상처를 입어도 아픔을 못 느끼다 병원에 와서야 느낀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엔도르핀의 작용입니다.

통증은 우리 몸이 주는 경고 신호이니만큼 통증을 하나도 못 느낀다고 좋아할 것은 아닙니다. 공룡이 몸이 큰 만큼 통증 신경들이 더 많이 분포하고 신경전달 속도가 빨랐다면 더 환경에 잘 적응했을 수도 있습니다. 공룡이 통증 세포가 느리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자고 써본 글입니다.

김주현 하이닥 소셜의학기자 (재활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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