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통 입맛도 없고 피곤한데… 의사 선생님, 링거 한 대만 놔 주세요”
칠순을 넘긴 한 할머니가 병원을 찾아 처음 꺼낸 말이다. 이 할머니는 중년 이후부터 몸이 피곤하거나 체력이 떨어졌다고 느끼면 ‘링거’를 맞아왔다고 한다.
‘링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기력이 약한 노인들뿐만이 아니다. 연예인들의 경우도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함에 있어 무리가 따른다 싶으면 일주일에 한번씩 ‘링거’를 맞아가며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는 사실이 종종 보도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맞을 수 있는 ‘링거’는 ‘만병통치 약’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울특별시 북부병원 가정의학과 전재우 과장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포도당 수액이나, 비타민 수액이 원기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일반적으로 흔하게 사용되는 포도당 수액에 포함된 열량은 밥 한 공기보다 적으며, 아미노산 함유 수액제의 경우에도 평소 균형잡힌 식생활에서 얻는 칼로리로도 충분히 섭취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 과장은 “오히려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신부전 환자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과도한 수액(링거)투여가 심혈관계에 무리를 주어 ‘독’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링거주사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맞을 수 있는 링거의 종류는 포도당, 생리식염수, 비타민, 아미노산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 수액제의 성분은 각각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포도당은 탄수화물,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이루는 영양소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한 끼의 식사량으로도 충분한 영양분에 불과하다.
평소 고혈압을 앓아온 환자나 신장 또는 심장질환자에게 전해질 보충용으로 사용되는 수액제제는 심장 쇼크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신장이 나쁜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링거를 맞게 되면 신장 기능이 악화될 수 있으며, 심폐 기능이 떨어진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다량의 링거를 맞게 되면 심부전이 악화되거나 폐부종 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알부민 같은 아미노산 제제의 경우 건강한 사람이 투여받을 경우 체내에 부족하지 않은 알부민이 그대로 소변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특히 간 기능이 약한 환자가 맞게 되면 체내 대사가 원활하지 않아 간성혼수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정맥주사를 통해 맞아야 하는 수액제제는 혈관의 감염이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 과장은 “링거 제제의 종류만 해도 수 십 가지가 넘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와 질병여부에 따라 신중한 처방이 필요하며, 컨디션이 나쁘다거나 기력이 쇠약해졌다고 판단해 무분별하게 영양주사를 맞는 것은 부작용 위험이 크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면서 “사람들이 링거를 맞고 기력을 되찾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링거를 맞는 동안 탈수 증상이 완화되거나 충분한 휴식과 숙면을 취하기 때문에 피로가 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물론 링거주사가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다. 심한 설사를 하거나, 아예 식사를 못하는 사람 등이 이에 해당되는데, 이는 수액투여로 탈수를 막고 필수 영양소를 공급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갑작스런 저혈당이나 저혈압으로 발생한 응급상황일 경우에는 적절한 수액 제제가 당 수치와 혈압을 조절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진 제공 = 서울특별시 북부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