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닥

전문가칼럼

‘욱’하는 대한민국, 문제는 분노조절장애일까?

입력 2015.11.18 14:12
  • 배성범·HiDoc 전문의

지난해 연말 서울 노원구 주차장에서 일어난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은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다. 사건의 피해자는 평범한 60대 가장이었고 가해자는 놀랍게도 평소 온순하기로 소문난 평범한 30대 음식점 주인이었다.

가족, 연인, 이웃 등 가까운 이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것은 물론 일면식도 없는 행인을 이유 없이 폭행하는 등 올해 들어서만 순간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해 대형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한순간에 난폭한 가해자로 만든 것일까?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두 명의 여성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두 명의 여성

요즘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분노조절장애’는 화의 빈도와 강도가 통상적인 정도를 넘어 대인관계나 사회적 기능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말하며, 기존의 발현양상을 위주로 기술한 ‘간헐적 폭발장애’로는 그 현상의 이면에 있는 감정들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정식 병명은 아니지만 '외상 후 격분장애’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고 넓게는 충동조절장애의 범주로 볼 수 있다.

특히 임상적으로 ‘간헐적 폭발장애’는 증상이 이미 많이 진행되어 감정의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따라서 증상 완화 이외에 근원적 치료가 어려우므로 사회적인 관심을 ‘외상 후 격분장애’라는 개념에 맞춰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감정의 대인 관계적인 측면을 고려해보면 외상 후 격분장애 즉 울분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그 양상의 실제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정의에 따르면 울분의 원인은 부당함과 같은 인생의 스트레스에 기인한다. 신체적인 손상이 아닌 기본적인 신념의 위반이라는 차원에서 트라우마틱한 경험을 하게 되는 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도 다르다. 즉 분노나 다른 어떤 충동적인 모습이 나타났다면 분명히 그런 양상을 띠게 된 이유가 있다는 감정의 상대성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또한, 기존에는 정신병리의 영역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개인과 사회체계와의 갈등을 아우르는 개념이기 때문에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사회분열현상이 나타나는 한국 사회자체를 이해하는데도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트라우마틱한 경험은 어려서부터 쌓여온 어떤 것일 수도 있고 최근의 특정 이벤트가 영향을 많이 끼친 일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서 울분이 형성되어 키워졌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치료도 어려우므로 이런 포괄적인 내용을 충분히 고려해서 접근해야 한다.

울분이 형성된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언어화하면서 살펴보는 과정에서 스스로 감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맺혔던 감정이 풀어지는 것이 심층상담 즉 정신치료의 과정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감정을 다루는 것이 예술가와 같은 특정인들의 작업대상으로 여겨지는 시각들이 많은데 자기 스스로 얼마나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지 그간 감정조절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 왔는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살펴볼 때이다.

▲ 욱하는 나도 분노조절장애일까? 분노조절장애 자가진단

자신이 잦은 분노와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밖으로 표출한다면 충동조절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아래의 자가진단법으로 일차적인 진단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각각의 항목에 자신이 해당하는 수준을 확인해 점수를 합산하면 된다.

충동조절장애 자가진단충동조절장애 자가진단

1. 나는 때때로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그의 험담을 늘어 놓는다.
2. 나는 화가 나면 가끔 물건을 던진다.
3. 나는 상대방과 다른 의견이 있다면 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나의 입장을 말한다.
4. 사람들이 나에게 호통을 칠 때 나도 맞서서 호통을 친다.
5. 나는 매우 흥분했을 때 누군가를 때릴 수 있다.
6. 나는 때때로 시비조로 행동한다.
7. 나는 거짓 협박을 자주 한다.
8. 나는 논쟁할 때 언성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9. 나는 나를 궁지에 빠지게 한 사람을 알면 그 사람과 싸운다.
10. 나는 때때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전혀 그렇지 않다 1점/ 약간 그렇다 2점 / 꽤 그렇다 3점 / 확실히 그렇다 4점

결과확인
공격적 성향 정도 ▶26~27점: 약간 있음 ▶28~29점: 상당히 있음 ▶30점 이상: 매우 높음

▲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감정조절의 TIP

대개 감정이 왜곡되어 표출되는 것은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심신이 긴장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평소에 심신을 이완하는 요가, 명상, 심호흡 등과 같은 이완 트레이닝을 해주면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화를 다스릴 수 없을 때는 그 장소를 잠시 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심층적인 마음의 작용과정을 살펴보는 자기탐구를 통해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상대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 즉 감정의 응축을 풀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화가 날 때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한 박자 멈출 수 있어지며, 화가 난 전체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중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게 된다.

아직은 충동조절장애의 정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회 전체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상대를 비난하기에 급급한 세태에서 알게 모르게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며 스스로가 가장 모르게 되어있는 무의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고 살아야 감정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심층심리상담은 마음이 답답할 때나,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싶은 누군가가 필요할 때, 멘토를 찾고 싶거나 인생 상담이 필요할 때,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우울증, 불안증, 자살 충동을 느꼈을 때 등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도 항상 상대의 반응은 내 마음의 거울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비친다 해서 외면하기보다 밝은 곳으로 꺼내놓고 신뢰 속에서 상대와 함께 풀어나가는 소통을 통해 더는 울분을 쌓지 않기를 바란다.

<글 = 동인마인드 배성범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RL이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