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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인류의 멸종은 운석 따위로 일어나지 않는다

입력 2018.05.02 09:27
  • 안창·굿맨비뇨기과의원 전문의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일이 얼마 전 있었다. 당시 약혼자에게 더 큰 기쁨을 주고자 성 기능 관련 약물을 처방받기 위해 자주 진료실을 방문하던 젊은 남성이 있었는데, 어느 금요일 늦은 오후 그가 진료실로 찾아왔다.

정자정자

“선생님, 저번 그 약 다시 부탁드려요. 이번엔 좀 많이 주세요. 내일 결혼식이거든요.”

“아, 축하드려요. 일주일 치면 되겠죠?”

“네, 그리고 온 김에 정액검사 한번 해 볼게요. 혹시 몰라서요”

그런데 그 ‘혹시’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는 무정자증 환자였던 것이다. 단 한 마리의 정자도 보이지 않았다. 인공수정도 불가능한 상황. 절망적이었다. 당장 내일이 결혼식인데 이를 어쩌란 말인가? 약혼자에게 알릴 것을 권유했고 남성은 동의했다. 역시나 몇 분 후 바로 약혼녀의 전화가 병원으로 걸려 왔다. 그녀는 패닉 상태였다. 원인에 대한 추적을 위해 호르몬 검사 등을 확인해야 하지만 신혼여행 후 오겠다던 환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최근 남성 불임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더 이상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위의 에피소드와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젊은 미혼 남성에게도 정액검사의 건강보험 적용을 허용해야 한다.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보면 인류 전체의 정자 수가 감소해가는 추세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마도 대기오염, 환경호르몬 같은 오염된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보인다.

오래전 접했던 ‘칠드런 오브 맨’이라는 영화가 문득 떠올랐다. 모든 남성이 무정자증이 되어 인류가 종말 해 가는 내용이다. 멸종은 공룡에게 일어났던 운석 충돌 같은 거대한 이벤트 때문만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위험’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안창 원장 (비뇨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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