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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우울증, 일상을 파괴하는 마음의 병

입력 2018.05.30 09:29
  • 김윤석·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전문의

우리의 마음에는 희노애락과 같은 여러 가지 감정들이 공존한다. 개개의 감정은 모두 그 존재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유독 슬픈 감정은 환영받기 힘들다. 우울감은 모든 일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규정짓는 현대 사회에서 더 위로받기가 어렵다. ‘우울증’. 과연 그 사람의 잘못으로 발생한 걸까?

얼굴을 가리고 우울해하는 여자얼굴을 가리고 우울해하는 여자

누구에게나 우울한 감정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우울한 감정을 알고 있다.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을 때,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술 마시고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 주말에 상사로부터 연락이 올 때. 우울한 감정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우리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다시 재도약을 할 수 있게 차곡차곡 에너지를 쌓게 해준다.

하지만 지나친 우울감이 지속하고 깊어질 때,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내 곁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우울증이 오면 어떤 일이 생길까?

30대 중반의 김 모 씨는 직장생활 8년 차다. 이제는 회사 내부의 사정도 잘 알고 있고 익숙한 업무들 속에서 팀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나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실수가 잦아지고 한숨만 자꾸 나온다. 걱정이 많아져서 일을 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쌓여가는 메일함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어떤 일부터 처리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제는 힘내라고 술을 사주며 다독이던 선배들의 관심도 버겁다. 괜히 퇴근 후에 육아로 지쳐있는 아내와 다툼만 늘어간다. 어서 빨리 하루가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에 누워서 잠을 청해보지만 이런저런 잡생각들만 떠오른다. 버텨낼 자신이 없다.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낼까? 그렇게 새벽 3시에 잠이 든다.

우울증은 어떻게 진단이 되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우울감, 무기력증, 집중 안 됨, 자살사고, 희망 없음, 불안, 초조, 수면과 식욕의 변화, 인지기능의 저하,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 증상 등이 2주 이상 지속할 때를 말한다. 진단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으로 이루어진다. 상담 내용은 최근의 스트레스 상황, 대인관계 패턴, 가족 관계, 양육 배경, 사회적 직업적 환경 등이다. 최근에는 보다 객관적인 진단을 위해 NIMH (미국정신건강기구)에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적 진단을 분류하는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따뜻한 분위기가 필수적

우울증은 골절이 생기고 피가 나는 외과적 질환과는 다르게 주변에서 한눈에 알아차리기 힘들다. 의지의 문제라며 방치하고 호통을 쳐서 병을 더 키우는 경우도 많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왜 제대로 걷지 못하느냐고 야단치는 셈이다. 세로토닌이 고갈되고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 해지는 현상은 의지의 문제로 다 해석될 수는 없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세상이 끝나는 듯한 상처를 많이 받는다. 주변의 지인들은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는 병간호를 한다고 생각하고 호통을 치기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따듯하게 대해줘야 한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되면 당신을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울감에 좋은 음식은?

우울감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는 바나나, 호두, 블루베리 등이 있다. 특히 식탁에서 제철 과일, 나물, 채소 등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떤 음식을 먹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음식을 먹는가도 중요하다. 스마트폰을 보며 허겁지겁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입안에서 어떠한 맛을 만들어내는지도 모르는 채 한 끼 배를 채운다. 음식을 먹을 때만이라도 오롯이 음식이 내는 색감, 입안에 들어갈 때 느껴지는 질감,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음식의 냄새에 집중하자. 감정적 허기 (emotional hunger)도 없어질뿐더러 자기 통제감을 갖게 되어 자존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

햇볕으로 우울감을 몰아내자

우울증 환자들에게 특히 비타민 D의 결핍이 흔하다고 알려져 있다. 비타민 D는 햇볕을 쬐면 체내에서 합성이 일어난다. 물론 정제된 알약을 복용하거나 주사를 맞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쬐며 머리를 비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더 추천한다. 오늘부터 점심 식후에 바로 일자리로 들어가지 말고 잠시라도 벤치에 앉아서 광합성을 하자. 자연스럽게 광 치료가 될 것이다.

우울증의 치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심각한 우울증은 6개월 이상의 약물치료와 함께 주기적인 면담 치료로 호전될 수 있다. 비약물적 치료로는 우울감으로 인한 인지적 왜곡 및 오류를 바로잡아주는 인지행동치료, 자기장으로 뇌를 자극하는 rTMS(경두개자기자극술), 전기적 자극을 주는 tDCS(경두개직류전기자극술) 등도 시도해볼 수 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자

직장 생활하랴, 아이들을 돌보랴, 대인 관계 유지하랴, 집안 대소사 챙기랴 우리는 쉴새 없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어른이라는 딱지를 달면서부터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새해마다 올 한해는 더 나은 내가 되기를 기대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그 의미도 퇴색해간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이 아닌 타인의 주변인으로 살아가기 십상이다.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을 정리해보자. 그리고 이번 주부터 일주일에 두 시간씩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따로 정하자. ‘멍 때리기’도 좋고 휴대폰을 끄고 생각을 정리하며 산책하는 것도 좋다. 나를 위한 자유 이용권을 발급하자.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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