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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몸으로 앓는 마음의 병, 전환장애

입력 2019.01.29 08:30
  • 김윤정·하이닥 건강의학기자

늦가을 차디찬 밤공기를 뚫고 49세 여성이 들것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하지 마비 증세를 보였으나 의식은 명료했으며 혈압이나 맥박도 정상이었습니다. 인턴이었던 저는 외상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다리에 힘을 줄 수 없고 아무런 감각이 없다고만 말했고, 동행한 배우자도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신경외과 전문의가 응급실로 내려와서 진찰하고 MRI도 촬영했지만 아무런 이상 소견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 여성은 밤새 각종 검사를 받았고 동이 트자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퇴원했습니다. 그리고 전환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는데요. 과연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응급실로 실려오는 여성응급실로 실려오는 여성

응급실에 내원했던 여성의 내원 당일 밤 이야기

평소 외도를 일삼던 남편의 행동을 참고 지켜보던 여성은 내원 당일 저녁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자신의 휴대폰을 몰래 훔쳐본 것을 문제 삼고 아내에게 폭언을 쏟아부었고 아내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은 뒤 하지마비 증상을 보였다고 하는데요. 남편은 당황해하며 119를 불렀고 응급실에서는 할 수 있는 검사들은 다 시행해달라고 하며 밤새 아내 곁을 지켰습니다.

전환장애가 무엇인가요?

심리적 갈등이 원인이 되어 주로 운동이나 감각 기능에 극적인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것을 말하며, 히스테리성 운동기능 이상이라고도 불립니다.

히스테리라고요?

히스테리(hysterie)라는 말은 성격을 설명할 때도 쓰이지만 전환장애와 같이 마음의 갈등이 극적인 신체 반응으로 나타나는 경우에도 쓰입니다. 이러한 증상은 여성에서 흔히 나타나며 자궁에 병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여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라(hystera)를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히스테리를 마귀, 미신 등을 그 기원으로 보았지만 19세기 말부터 샤르코, 블로일러, 프로이드 등이 심리와 과학의 영역으로 정립시켰습니다. 이는 역사상 여성이 화두가 된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였습니다.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는 여성스트레스로 힘들어 하는 여성

어떤 증상이 나타날 수 있나요?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거나 팔, 다리에 마비가 오는 감각 이상 증상이 올 수 있습니다. 경련과 실신도 가능하며 말이 나오지 않는 함구증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종 검사를 해도 증상과 일치하는 이상소견이 없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갑자기 밝은 빛을 비추면 움찔하고 마비 증상이 있다고 하나 무조건 반사 등은 정상으로 나옵니다.

그거 꾀병 아니에요?

꾀병은 본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질병을 연기하는 것으로 실제로는 통증이나 감각 이상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환장애는 환자가 의도해서 생긴 것이 아니며 실제로 아파하며 감각 이상이 존재합니다. 환자는 본인의 무의식적 동기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치료받고 있는 여성치료받고 있는 여성

어떤 경우에 잘 생기나요?

여성이 남성보다 2~5배 잘 발생하며, 10~15세 사이에 잘 일어나는 편입니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고 의학적 지식이 낮은 사람, 농촌에 거주자에서 더 잘 나타납니다. 인격장애가 있을 때도 나타날 수 있는데 남자는 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에서, 여자는 주로 연극성 인격장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요?

주변의 관심으로 전환장애의 증상이 더 오래 지속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보호자들은 침착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철저히 객관적인 검사로 전환장애의 진단이 내려진다면 환자의 요구에 의한 추가적인 검사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단기간 입원하여 면담 치료를 받기도 하며 심리적 갈등의 원인을 탐색하는 정신과적 면담, 최면치료 등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도움말 = 하이닥 의학기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윤석 원장(서울맑은정신건강의학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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