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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김윤석의 마음건강] 1시간 이상 샤워하고 손을 계속 씻어요, 청결 강박증 ②

입력 2019.09.17 15:30
  • 김윤석·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전문의

# ‘깨끗해’ 양의 집은 오늘도 전쟁터처럼 시끄럽다. 인제 그만 씻고 나오라는 엄마의 잔소리와 알겠다고 소리치는 ‘깨끗해’ 양. 그녀는 지금 1시간째 샤워를 하는 중이다.

청결강박증청결강박증

그녀 역시 얼른 씻고 나가고 싶지만, 몸 여기저기 비누의 화학 성분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멈출 수가 없다. 샤워를 마치고도 그녀만의 정해진 순서대로 몸을 닦고 샤워용품을 제자리에 두느라 밖을 나오는 데에도 수십 분이 걸린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샤워를 마치고 밖을 나오다가 변기에 있던 오염물질이 몸에 닿은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다시 샤워하러 들어간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지만 멈출 수가 없다.

샤워하는 여성샤워하는 여성

◇ ‘깨끗해’양을 괴롭히는 ‘청결 강박증’

여러분들은 ‘깨끗해’ 양의 행동이 이해되는가? 그녀는 오염에 대한 과도한 공포로 ‘청결 강박증’을 앓고 있다. 비단 샤워할 때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어서 겨울만 되면 심하게 손이 튼다. 깨끗함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은 나머지 더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청결에 대한 강박 사고와 불안감은 비례해서 증가한다. 이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씻어버리는 등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강박 행동을 반복하게 되지만 불안감의 감소는 일시적일 뿐이다.

청결 강박감이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깔끔한 성격’, ‘언제나 청결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불시에 집을 방문하더라도 집안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고 흰 빨래는 새하얗다. 오래된 가전도 변색되어 있을지언정 번쩍번쩍 광택이 난다. 자동차는 실내, 실외 할 것 없이 항상 광이 나고 쾌적하다. 그런데 과연 그들은 청소나 빨래, 세차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일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청결 강박증 환자는 청소나 세차 등을 부탁받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청소가 좋아서 한다기 보다는 더러운 것이 보기 싫고 불쾌하고 불결하다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하는 고통스러운 행동의 결과물이다. 즉 엄습해오는 불안감으로부터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이다.

청소하는 여성청소하는 여성

◇ 성격탓? 치료가 늦어지는 청결 강박증

2015년에 시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강박증 환자가 병원에 내원하기까지 평균 7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더니 빈도 순서대로 ‘저절로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해서’, ‘강박증은 질병이 아니라는 생각’, ‘스스로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 ‘강박증은 불편하지 않다는 생각’, ‘병원에 가면 약을 먹게 될까 봐’라고 나타났다. 실제로 강박증의 증상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거나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치료를 받지 않고 지낸 기간이 길수록 치료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여러 연구에서 일관성 있게 보고하고 있다. 수년 이내에 자연 관해가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성격 탓이라고만 여기고 혼자서 이겨내려 하기보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 및 치료를 통하여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는 것은 어떨까? 오염 공포에서 해방되어 그간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모래 주머니를 내려놓는다면 ‘내가 살던 세상이 이렇게 상쾌할 수도 있구나’라는 다행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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