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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김윤석의 마음건강] 뾰족한 것을 보면 누가 다칠 것 같아요, 공격 강박증 ③

입력 2019.09.24 10:55
  • 김윤석·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전문의

‘너다쳐’ 군은 여러 명이 함께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지만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여지없이 식은땀을 흘린다. 각종 뾰족한 문구류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뾰족한 가위가 벌어진 채로 책상 위에 놓여 있으면 누가 잘못해서 손을 베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가위의 칼날 방향을 돌려놓거나 연필꽂이에 꽂아 놓는다.

공격 강박증공격 강박증

커터칼이나 송곳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다칠 것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생각을 떨쳐버리려 애쓰지만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에 다시 지나온 자리로 돌아가서 칼, 커터칼, 송곳 등을 정리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이는 비단 사무실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월호나 교통사고 관련 뉴스, 블랙박스 영상 등을 접하면 이러한 일들이 우리 가족들에게 일어나는 상상이 떠오르면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우연히 사건 사고 관련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당장 연락을 해서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불안감이 커져만 간다. 때에 따라서는 나도 모르게 타인을 해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죄책감에 너무 괴로워할 때가 많다.

◇ 물건이, 상황이 우리를 다치게 할 것 같아요. ‘공격 강박증’
‘너다쳐’ 군은 ‘공격 강박증’을 앓고 있다. 단순한 염려나 걱정 등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강박증에 비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 심각성에 대해서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공격 강박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다칠까 봐 뉴스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격성이 타인이 다치는 것으로 발현될 수 있지만, 타인을 해치는 생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보이는 사람이 타인을 죽이거나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죄책감에 말도 못하고 여러 날을 보내다가 진료실로 오기도 한다. 심지어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자신의 아이에게 그러한 생각이 나타나게 되어 과도한 죄책감이 우울증으로 이어져서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 공격 강박증, 행동보단 상상력으로 발현해
상상하는 남성상상하는 남성 공격 강박증은 다른 강박증과 달리 행동으로 잘 나타나지 않고 행동에 대한 이미지만 머릿속으로 맴도는 경우가 많다. 타인을 해친다는 생각이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이기 때문에 혹여나 타인이 눈치챌까 봐 노심초사하게 된다. 강박 행동으로 잘 표출되지 않지만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 머릿속으로 특정 생각을 반복하게 되는데 대개 숫자, 기도문을 반복하거나 긍정적인 단어를 되뇌기도 한다.

이렇듯 강박증의 증상은 다양한데 미국에서는 강박증이 정신질환 중 네 번째로 흔한 질환으로 조사되었다. 공포증, 물질남용 장애, 우울증 다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또한 WHO에서 선정한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10대 질환에 선정될 정도로 모든 영역을 통틀어 보았을 때도 힘든 질환이다. 연령대별로는 다르지만 전체를 본다면 남성과 여성의 발병 비율이 같다. 주로 10~20대에 발병하는 편이며 발병이 시작된 연령이 이를수록 치료가 쉽지 않은 편이다.

동반되는 질환으로는 76%에서 불안장애, 63%에서 우울증 및 조울증, 41%에서 주요 우울 장애가 있다고 하니 강박증 환자들은 우울, 불안장애로 진료실을 찾기도 한다. 따라서 강박증을 치료할 때에는 강박증 이외에도 다른 질환은 없는지에 대해 면밀히 살펴서 다각적인 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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