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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김윤석의 마음건강] 영수증도 못 버려요, 저장 강박증 ⑤

입력 2019.10.08 09:30
  • 김윤석·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전문의

# ‘안버려’ 양은 편의점을 애용하는 20대 여성이다. 편의점에서 식사부터 간식까지 해결하고 커피도 마신다. 그리고 집 가까운 곳을 가더라도 항상 때 묻은 연두색의 백팩을 메고 다니는데 그 용도는 무엇일까? 백팩을 열어보면 편의점에서 먹고 난 샌드위치 포장지, 빵 봉지, 빈 커피 용기, 결제 영수증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혹시라도 나중에 사용될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편의점에서 구매하고 먹은 뒤 나오는 껍질들을 백팩에 담아둔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책상 위에 그것들을 쏟아부은 뒤 비슷한 유형대로 한쪽으로 쌓아 둔다. ‘안버려’ 양의 방안은 누울 자리와 앉을 자리 이외에는 6~7년 전에 먹었던 빈 커피 용기와 물통, 과자 껍질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어머니는 ‘안버려’ 양과 정리 문제로 어린 시절부터 갈등이 심했다. 설득도, 회유도, 윽박질러 보기도, 허락 없이 물건들을 다 치워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안버려’ 양의 불안, 초조 증상은 심화되었고 심지어는 갈등 끝에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 ‘다쌓아’ 여사님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각종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자랐다. 하지만 이러한 집안에도 말 못 할 사연이 있었으니 바로 ‘다쌓아’ 여사님이 의미 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창고에 쌓아 둔다는 것이다. 창고에는 여행을 다니면서 구매한 소품들부터 시작해서 화장실 변기 뚜껑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쌓여 있다. 언젠가는 쓸모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정리 없이 쌓기만 한다.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수십 년째 쌓이다 보니 놔둘 곳이 없다. 결국 ‘다쌓아’ 여사님은 이삿짐 보관 센터에 보관하며 관리비를 내는 컨테이너만 3개다.

저장 강박증저장 강박증

‘안버려’ 양과 ‘다쌓아’ 여사님은 저장 강박증 환자이다. 저장 강박증은 물건들의 실제 가치와 관련 없이 버리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방 안의 공간이 없을 정도로 과도하게 물건을 모은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게 되다 보니 신문, 옷가지, 잡지, 책등 잡동사니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된다. 음식물이나 쓰레기들이 처리되지 않아 비위생적인 상황에 놓이고 집을 정리해주려는 사람들과 극심한 마찰을 빚기도 한다.

쓰레기봉투를 두고 놀라는 여성쓰레기봉투를 두고 놀라는 여성

저장 강박증의 대상은 물건뿐만 아니라 동물이 될 수도 있다. 2016년에 미국의 미시간주에 있는 한 집에서 집주인 부부가 300마리 이상의 강아지를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에 모아 놓고 방치를 하여 벌금형을 받기도 했고 2014년에 미국의 네바다주에서는 수백 마리의 죽은 새가 집 안에 쌓여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저장강박증은 강박증 중에서도 예후가 가장 나쁜 유형이다. 치료가 어려운 질환일수록 치료법이 다양한 법인데 한 가지 방법보다는 인지행동치료, 동기 강화 면담 기법, 약물치료 등을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여성쓰레기통을 뒤지는 여성

정신과 영역에서 공황장애, 우울증, 불면증은 비교적 친근한 편이지만 강박증과 관련된 인식은 부족한 편이다. 그 때문에 강박증은 단순히 성격만의 문제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 강박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 불안을 느끼며 꼼꼼하고 완벽하게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증상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만 괴로워한다. 내가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혹여나 강박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지 않은지 관심을 두자. 그리고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질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자. 혼자서만 끙끙대고 막막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던 탁한 세상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게 될 테니 말이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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