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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가 말하는 ‘코로나블루’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

입력 2020.03.20 10:04
  • 김윤석·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전문의

8세 김모 양은 오늘도 엄마에게 온갖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엘리베이터 버튼만 만져도 바이러스에 걸려?”, “오늘 확진자는 몇 명이야?”, “아까 손 씻었는데 또 씻어야 해?”. “오늘도 온종일 집에 있어야 해?”.

한차례 개학이 연기되었지만, 곧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버티던 김모 양의 어머니. 최근 개학이 한 번 더 미뤄진다는 소식을 듣고 무기력해져 있던 찰나, 딸의 질문 공세에 자기도 모르게 “왜 그런 걸 묻고 난리야! 어서 방에 들어가서 숙제나 해!”라고 말하며 짜증을 낸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가던 김모 양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 소파에 몸을 파묻고 목적 없이 스마트폰 액정을 문질러댄다.

날이 풀리고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겨울을 나고 있는 것 같다. 길거리를 나가 보면 얇은 옷을 입고 깔깔대며 봄을 맞이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온데간데없다. 장기화하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부모도, 아이도 서서히 지쳐간다. 김모 양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아닌 바로 우리네 집 안의 풍경이다. 

확산세가 주춤해 보이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 중동, 미국 등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다. 이미 글로벌 팬데믹(global pandemic)이 선언된 상황으로 눈만 뜨면 연신 새로운 기록에 대한 뉴스가 우리의 마음을 두렵게 만든다. ‘확진자’, ‘사망자’, ‘집단 감염’ 등의 자극적인 용어는 그 뜻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감염 이후의 증상도 겁이 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이유로 인간의 자유 의지를 박탈 당한 지 벌써 3개월째. 우울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답답해하며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우울감을 뜻하는 ‘블루(blue)’의 합성어인 ‘코로나 블루’라는 말도 생겨나고 있다. 

◆ 부모들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우울감을 느끼면 자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첫째, 부모의 과도한 불안과 염려는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자녀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될 수 있다.

부모가 지인과의 전화 통화 중 흥분한 목소리로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루머를 전달하는 모습을 본 자녀들은 표현하지 않지만 불안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맥락에 대한 해석과 배경지식이 부족한 자녀들은 아빠와 엄마가 헛기침만 해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서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부모의 과도한 건강에 대한 염려에 영향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신체 증상에 대해 과도한 해석을 하기도 한다.

둘째, 부모가 무기력해 하면 자녀들은 스마트폰이나 TV, 게임 등에 오랜 시간 노출될 수 있다.

자녀들이 키즈 카페, 쇼핑몰, 나들이 등을 못 가고 친구를 만날 수 없게 되면서 지루함을 느낀다. 부모와 함께 무엇인가를 하길 원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으로 무기력해져 있는 부모는 자신을 가만히 놔두라며 스마트폰을 쥐여 주거나 TV를 틀어준다. 가족 간의 대화는 더욱 없어지고 과도한 자극에 노출된 자녀들은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며 책이나 대화를 멀리하고 전자 기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셋째, 우울감, 답답함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다 보니 곧잘 자녀에 대한 짜증으로 이어진다.

 하루 세끼를 다 챙겨주고 매번 할 일을 정해주는 것에 지쳐 사소한 질문에도 화가 난다. 화를 내고 돌아서면 후회와 자책 등이 반복해서 밀려오지만, 다시 쉽게 짜증을 낸다. 아이들은 화가 나 있는 부모의 모습에 주눅 들고 부정적인 지적에 반복해서 노출되다 보면 자존감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부모가 건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아이들이 건강한 에너지를 받고 성장한다.

부모가 지치기 전에 한 사람이 도맡아 하던 집안일을 나눠서 해보자.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든 집안 구성원들이 이번 기회에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수행하자. 그리고 서로 수고 했다고 칭찬하자.

둘째, 자녀들의 생활 습관이 흐트러지지 않게 계획표를 만들자.

방학이 길어지면서 늦게까지 놀고 늦잠을 자는 게 습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변해버린 생활 습관은 다시 되돌리는데 많은 에너지가 든다. 함께 시간표를 짜보자.

셋째,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놀이 방법을 생각해본다.

가족이 한자리에서 할 수 있는 보드게임, 추억의 달고나 만들기, 자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쿠키 만들기 등이 있다. 각자 방에서 흩어져 생활하던 가족들을 한데 모을 기회로 만들어보자.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린 요즘. 가장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서, 자녀와 건강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노력하자. 하루하루 오늘 이 장소,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이 지루한 싸움이 끝나가고 봄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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