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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N번방 속 사람들의 심리는?

입력 2020.03.26 10:49
  • 김윤석·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전문의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찍고, 이를 유포해 수익을 챙긴 ‘N번방’ 사건이 화제다. 연일 믿을 수 없는 그들의 범행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분노했고 이들의 신상을 전부 공개하라는 국민청원은 189만 명에 이르렀다. 도대체 이 악마소굴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던 걸까? 그래서 N번방 속 사람들의 심리를 하이닥 상담의사 김윤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물어봤다.

Q1. 자극적인 영상물을 탐닉하는 사람들의 뇌 구조와 심리는 무엇인가요?

술, 도박, 섹스, 음식에 중독된 사람들의 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뇌는 바로 ‘도파민(dopamine)’이라는 쾌락 물질에 굶주려 있다는 것입니다.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생존과 종족 보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고열량, 고지방의 음식을 먹게 되면 뇌의 특정 부위에서 활성화됩니다. 이 때문에 달콤한 초콜릿이나 마블링이 풍부한 소고기를 한 점 먹을 때 우리는 행복한 느낌을 받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이러한 음식을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도파민은 종족 번식을 위해 이성과 성관계를 하기 전에 설레고 흥분되게 만들어 사랑에 눈멀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도파민은 소소한 성취감, 다행감, 만족감 등을 이끌어 동기 부여를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쾌락 보상 중추가 망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극을 갈구합니다.

최근 텔레그램 속 ‘N방 사건’을 들여다보면 도파민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뇌가 보입니다. 그들은 피해자의 인권이나 수치심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며 쾌락을 추구합니다. 놀랍고, 가학적이고, 잔인한 요소들은 우리의 뇌를 흥분시켜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듭니다. 도파민이 떨어지는 느낌을 메우기 위해 더 새로운 영상,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나섭니다. 실제로 ‘박사방’에서 지불하는 액수가 커질수록 엽기적이고 잔혹하고 놀라운 영상물을 접할 수 있는 방으로 옮겨갈 수 있었습니다.

마약이나 술, 섹스 중독은 모두가 쾌락을 추구하지만, 물리적으로 지속할 수 없는 상태에 빨리 다다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영상을 구독하고 공유했던 사람들의 행동은 앞선 중독과는 다르게 물리적인 피로가 크지 않았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새로운 자극을 끝없이 접했습니다. 도파민이 가파르게 감소하기 전에 더 강력한 자극을 통해 더 많은 도파민으로 뇌를 채우며 피해자들에게 악마와 같은 행동을 요구했습니다.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쾌락 욕구만을 갈구한 그들에게 강경한 법적 조치가 상응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또다시 반복해서 제2의, 제3의 피해자들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Q2. 미성년자에게 열광했던 사람의 심리는 무엇인가요?

이번 사건의 피해자 중 1/3가량이 미성년자였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분노하게 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미성년자들은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친구이며 아직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러한 미성년자들에 대한 성적 폭력, 억압, 가학적 행동에는 여러 가지 심리적 배경이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자라오면서 동성과의 경쟁에서 좌절을 느끼고 무력감을 느낀 부분을 보상하기 위해 자신이 마음대로 다루고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이기 때문에 본인은 왜 그런지 모른 채 미성년자를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삼고 탐닉합니다.

정상적인 성행위에서 벗어난 성적인 자극이나 행동으로 흥분 및 오르가즘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성도착증(paraphilia)’ 환자라고 합니다. 물론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들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되어야 진단이 내려지기 때문에 진단 기준이 까다롭긴 하지만 ‘박사방’에 가입하여 거액을 지불하고 피해자들에게 반인권적인 행위를 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러한 성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은 본인이 추구하는 성적 대상에 대한 특별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환상과 관련된 극치감이 행동과 충동을 불러일으킵니다. 가해자들은 추적 불가능한 텔레그램이라는 사이버 공간과 가상화폐로 돈을 지불하는 등 철저한 익명성을 앞세웠습니다. 시커먼 가면 뒤에 숨어서 자신의 비정상적인 성적 욕구를 채운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있는 조용하고 착실한 사람인 경우도 많습니다. ‘박사방’ 등에 가입한 1만 명 이상의 신상이 공개된다면 그들의 평범했던 이미지에 놀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해외에서는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가해자에게 살인죄와 유사한 중형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주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25년형부터 종신형까지 사회로부터 격리할 정도의 선고를 내립니다. 이는 그만큼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겪을 고통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Q3. N번방 속 사람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한가요?

N번방의 영상을 공유하고 피해자에게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가해자들은 치료 이전에 법적인 처벌이 필요합니다. 사법기관은 조속히 법의 정확성과 즉시성을 보여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평생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봐 불안해하며 일상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시달릴 수 있으며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가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사이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성 착취 등이 범죄라는 사실에 대한 강력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과거 직장에서 만연했던 성희롱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을 때 남성들의 반발이 컸습니다.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가해자의 상당수는 ‘그게 범죄인 줄 몰랐다’는 말을 했습니다. 성희롱 예방 교육이 법정 의무 교육으로 채택되면서 많은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간혹 TV에서 재방영하는 15년 전 시트콤이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성희롱적인 발언과 행동들이 다수 관찰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도적, 의식적 정비를 단단히 해서 사회적 약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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