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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만 있을까? ‘이혼 자녀의 세계’ 살펴보기

입력 2020.05.15 11:09
  • 김윤석·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전문의

# 여기 한 중학생 소년이 있다. 그 소년은 최근에 물건을 훔쳤고 자동차에 흠집을 내었으며, 무단 외박, 친구 때리기, 등교 거부를 하곤 부모님 앞에서 자퇴를 운운한다. 누가 봐도 완벽해 보이는 가정에서 자랐었던 아이가 한 행동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이 아이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는 최근 논란과 관심의 중심에 서 있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 속 주인공 부부의 아들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세밀하게 설계된 심리 감정선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을 앞세워 최고 시청률 24%를 자랑하고 있다. ‘외도’, ‘이혼’, ‘복수’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내세워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그간 부부 관계에만 집중했던 다른 드라마와 달리, 어른들의 다툼 아래 상처를 받고 변해가는 자녀에 대한 이야기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사진 = JTBC 부부의 세계 홈페이지

이혼 자녀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는?

철저히 극 중 아이의 관점만을 따라가 보자. 아이에게 부모님의 이혼이란 단순히 부모님 사이의 이별이 아닌 나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진다. 이혼 과정에서 아버지, 어머니는 각자의 입장에서 아이를 위하는 말을 해왔지만, 결국 두 사람은 아이를 속인 꼴이다. 부모님의 세계 속에서 자라왔던 아이의 믿음은 깨졌고, 더 앞으로 나아갈 힘과 이유를 찾지 못한다.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훔치면서 만족감을 얻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들켰을 때는 제어가 안 될 정도로 폭력을 행사했다. 적어도 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더는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

이혼한 부부는 자녀 앞에서 몇 가지 혼란스러운 행동을 하기 쉽다. 첫째,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녀들에게 상대 배우자를 비난한다. 아이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 상대적으로 타인의 비난에서 벗어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아이에게 과잉된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이성이 마비되면 아이의 감정 상태를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식으로 하소연을 하지만 이는 아이에게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무게로 전달될 수 있다. 셋째, 아이만은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며 아예 이혼 관련 이야기를 쉬쉬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어른들은 이혼에 대한 아이의 감정을 알아보려고 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 사진 = JTBC 부부의 세계 홈페이지

이혼을 결심한 부부, 자녀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첫째, 상대방에게 긍정적일 수 없다면 아이에게는 최소한 중립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자. 부정적인 뉘앙스는 자녀로 하여금 두 부모 모두를 잃게 만든다.

둘째, 자녀에게 이혼에 대한 부분을 설명할 때 결정하기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고민 중이라고 솔직히 이야기해 주자. 어른들 자신도 답을 모르는 문제라고 해서 자녀에게 둘러대거나 쉬쉬하면 아이들도 눈치 보고 해결되지 못한 감정을 평생 안고 가게 된다.

셋째,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노력하자. 아이들은 이혼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많은 말보다는 많이 들어주려는 태도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이의 느낌과 감정에 대해서 대화를 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치관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날로 증가하는 이혼율을 보고 있노라면 이혼에 대처하는 자세도 결혼 못지않게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는 괜찮은 척, 아는 척하지 말자.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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