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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로 우울해요,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생태 슬픔’

김윤석 |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
등록 2020-10-13 10:14

빙하가 녹아서 더는 먹을거리가 없어진 러시아 북쪽의 백곰들이 배가 고파 사람 사는 곳의 쓰레기장을 뒤적이는 모습. 세계 최고의 산호 군락지라고 불리던 호주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의 산호가 어느새 80% 넘게 죽어버리면서 흑백사진처럼 변해버린 버린 바다의 풍경. 작년 9월에 시작된 호주 산불은 진화까지 6개월이 걸렸고 그로 인해 10억 마리의 동물이 죽은 사건. 이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생태계의 파괴. 생태계의 파괴는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최근에는 이로 인한 우울, 불안, 절망, 자살 사고 등으로 이어지는 ‘생태 슬픔(ecological grief)’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생태 슬픔’은 처음 들어봐요

‘생태 슬픔’이란 ‘기후 슬픔(climate grief)’라고도 알려졌는데 환경파괴 또는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에 대한 심리적 반응을 일컫는다. 가속화되는 생태계의 변화로 인해서 기온, 기후, 동식물의 종 등의 교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대다수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심리적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최근에서야 부각되고 있다. 마치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퍼졌을 때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 등에만 관심을 갖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인 ‘코로나 블루(corona blues)’에 대한 관리 수칙이 홍보되었던 것처럼. 생태계와 인간은 밀접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명제는 필연적이다.

‘생태 슬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생태계의 변화를 최전선에서 경험하는 사람들은 농부, 과학자, 야생지역의 원주민 등이 있다. 2018년 4월 기후변화 관련 네이처지(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된 한 칼럼에는 호주의 농부들과 캐나다 북부의 이누이트 부족민들의 ‘생태 슬픔’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들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풍경들, 동물들, 기후의 변화를 보면서 점차 이동하거나 경작할 땅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우울감이 찾아온다. 또한 이제껏 축적되어온 삶의 지혜들이 더는 쓸모없어지게 될까 불안해진다. 그리고 앞으로 사라질 그들의 문화, 삶의 방식, 생계 등을 떠올리며 불확실에 대한 불안과 우울을 느낀다.

미국의 해양 생물학자인 스티브 심슨(Steven Simpson) 박사는 20여 년 전만 해도 호주의 거대한 산호 군락지인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에서 연구할 때만 해도 각종 생명들의 보물섬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매년 눈에 띄게 변화가 일어나며 산호가 죽어서 백화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고 충격을 받는다. 생의 상당 부분을 바쳐서 연구해왔던 산호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에 대한 깊은 상처가 남았고 행동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생태 슬픔’을 극복하려는 사람들

기후의 변화를 체감하고 걱정하는 과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 소통하며 지지하라’고. 당장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우리가 그러한 힘을 가질 수 있으려면 서로가 소통하고 감정에 대해서 공유하고 위로받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착안했을까? 영국의 더비 대학교(Derby University) 미술치료 학과의 제이미 버드(Jamie Bird)박사는 기후변화에 대해 느끼는 분노, 좌절감, 죄책감, 슬픔 등의 감정을 다루는 커리큘럼을 편성하였다. 지역의 기후 운동가들과 협업하여 워크숍을 통해 기후 변화와 인간의 감정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리고 예술적인 창의성을 통하여 감정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생태 슬픔’은 낯설지만 피할 수 없는 우리들의 과제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미세먼지 없는 맑은 가을하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일회용 제품들의 생산과 소비가 역사상 최고점을 기록하고 있다. 항체가 생성되면 언젠가는 해소될 코로나바이러스와는 달리 ‘생태 슬픔’이 일반인들에게 찾아오기 시작하면 그땐 이미 늦게 된다. 환경에 대한 거창한 과제를 떠올리기보다는 당장 내가 편하게 하자고 입고, 쓰고, 타고 다니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글 = 하이닥 의학기자 김윤석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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