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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가이드라인 춘추전국시대 연 유럽고혈압학회의 선택은?

입력 2018.06.10 20:02
  • 김선희·하이닥 건강의학기자

지난 5월 대한고혈압학회가 5년 만에 고혈압 진단 기준 가이드라인을 개정한다는 소식에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그에 앞선 지난해 11월 미국심장학회 및 미국고혈압학회가 고혈압 진단 기준을 130/80mmHg로 낮추면서 세계 의학계에 파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 미국가정의학회, 미국내과학회, 미국당뇨병학회 등 미국 내부에서조차도 고혈압 기준을 강화한 이번 조치에 대해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수용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한고혈압학회도 이와 뜻을 같이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이해영 교수(대한고혈압학회 학술이사)는 “미국심장학회의 결정을 수용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며, 우리나라는 고혈압 고위험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혈압치료를 받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지 않고, 사회경제적 부담을 고려했을 때 현행 진단 기준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것이 대한고혈압학회가 5년 만에 고혈압 진단 기준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면서 ‘140/90mmHg’이라는 기존의 진단 기준을 유지한 배경이다.

유럽고혈압학회회의유럽고혈압학회회의

미국, 캐나다, 일본, 한국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자체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유럽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유럽고혈압학회와 유럽심장학회는 현지시각 8~1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유럽고혈압학회회의(European Society of Hypertension 2018)를 통해 2014년 이후 4년 만에 고혈압 진단 기준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현지에서 직접 발표내용을 접한 이해영 교수는 “유럽고혈압학회가 선택한 고혈압 진단 기준은 우리나라와 같이 기존의 ‘140/90mmHg’을 유지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미국고혈압학회의 고혈압 진단 기준 개정안에 대한 불수용 입장을 확고히 한 것이다. 다만 이해영 교수는 “유럽고혈압학회는 고혈압 환자의 1차 진료(first line)부터 고혈압 치료제 병합제 사용 권유라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고 전하고 “이는 미국고혈압학회의 개정안 발표 때와 같은 큰 논란을 불러올 것”이라 내다봤다. 이에 유럽심장학회 및 유럽고혈압학회 가이드라인 개정안에 대해 이해영 교수의 도움말로 주요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2018 유럽고혈압학회 고혈압진단가이드라인 - 고혈압의 정의 및 분류 기준2018 유럽고혈압학회 고혈압진단가이드라인 - 고혈압의 정의 및 분류 기준

1. 고혈압 환자의 초기 약물치료로 단일복합제 사용 권유 및 이에 따른 권장 혈압의 하한치로 120/70mmHg 제시

최근 고혈압 관리에서의 가장 큰 과제는 2000년 초중반까지 꾸준히 향상되던 고혈압 조절률이 2000년대 후반 이후 향상을 멈추고 정체상태라는 점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 초중반까지 고혈압의 조절률이 급격히 향상된 데에는 Amlodipine(암로디핀)으로 대표되는 non-hydropyridine 칼슘 길항제와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2000년 중반 이후 심혈관 사고 발생에 수년이 걸리는 고혈압의 특성과 어울리지 않게 약제 허가 요건으로 장기 효과를 증명해야 하는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고, 기존 약제로 충분하다는 치료적 타성(Therapeutic inertia)이 결합하여 Aliskiren, renal denervation, 가장 최근의 Entresto(엔트레스토) 등이 충분한 탐구도 이루어지지 않은 체 고혈압 약제로서의 개발이 중단됐다.

예컨대 혈압을 160mmHg에서 143mmHg까지 낮추는 데에는 모두의 공감 속에 새로운 약제의 개발과 치료 현장에서 약제 추가가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서 혈압이 143mmHg라면 현행의 모든 가이드라인을 따라 새로운 약제의 추가가 추천되어야 하지만 실재 임상에서는 “운동하세요”, “싱겁게 드세요” 등 성취 가능성이 낮은 생활 관리요법만 오갈 뿐 약제 치료가 강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개개인 환자에서는 143mmHg를 140mmHg 이하로 확실히 낮추는 것의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역학 연구의 결과는 사회 전체의 고혈압 조절이 5mmHg 더 이루어지면 뇌졸중 발생률은 14%, 심혈관 사고 발생률은 9%까지 더 낮아지는 공공보건학적 효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Therapeutic inertia를 깨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심장학회 및 미국고혈압학회가 선택한 방향은 고혈압의 진단 기준을 낮추어 주위를 환기시키는 것이었고 이번 유럽가이드라인에서는 초기 치료로 병합제 사용을 권유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과거 가이드라인에서도 고위험 고혈압 환자에서 초기부터 병합 치료로 시작할 수 있음이 권유되었지만, 이번 가이드라인에서는 저위험군의 1기 고혈압 환자는 80세 이상의 고령자에서만 초기 단일제로 치료를 시작하고 나머지 모든 고혈압 환자에서 레닌-안지오텐신계 차단제에 칼슘길항제 혹은 이뇨제가 결합된 단일 복합제로 치료를 시작하기를 권유했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단일 약제로 시작하여 효과를 평가하고 추가 강압이 필요한 경우 약제를 추가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50% 이상의 고혈압 환자가 140mmHg 이하라는 통상적인 치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는 단일 약제로 시작한 환자에서 예컨대 혈압이 143mmHg에서 더 이상 낮아지지 않아도 두 번째 약제가 추가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반면 메타분석에서는 혈압이 130~139mmHg일 때, 심지어 130mmHg 미만으로 조절될 때에도 추가 이득이 관찰되었기에 이번 유럽가이드라인에서는 공공보건학적인 측면에서는 고혈압 조절이 부족할 때의 위험성보다 과다할 때의 위험성을 감수하는 것이 위험 대비 효과상 이득이라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혈압 약제의 초기 병합제 사용 전략은 2017년 캐나다 가이드라인에서도 채택한 바 있으며 당시에는 초기 복합제 사용군이 단계적 증량군보다 장기적으로 혈압 조절률이 더 높았다는 자국의 STITCH 연구 결과를 반영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번 유럽가이드라인의 전략 수정은 캐나다 가이드라인의 경우보다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된다.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이해영 교수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이해영 교수

2. 치료 목표 혈압(Target goal BP)의 강화

초기부터 단일복합제 사용을 권유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여 고혈압 조절 목표치 역시 강화됐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강화 치료에는 필연적으로 과다 치료에 따른 부작용 위험성이 동반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혈압 조절의 하한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 즉 그동안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이 ‘낮춰야 하는 목표 혈압’을 제시했다면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최초로 ‘120/70mmHg’를 하한치로 하여 Step down을 고려하기를 권유한 것이다.

이는 혈압의 경우 고지혈증과 달리 the lower, the better가 적용되지 않고 J curve가 존재하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일견 타당하나 120/70mmHg라는 인위적 수치에 대한 근거가 미약하고, step down therapy의 전략 - 예를 들어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칼슘길항제 단일복합제를 사용하던 중 혈압이 118/68 mmHg라면 증상이 없어도 약제를 감량할지, 만약 감량한다면 어떤 약제를 어떻게 줄일지에 대한 전략 - 은 전혀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혼란의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Step down strategy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나 이러한 연구를 제약 회사가 진행할 이유는 만무하기 때문에 학회나 보건 당국 주도의 공익적 임상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

3. HMOD (Hypertension mediated organ damage) 용어의 등장과 좌심실 비대의 중요성 강조

이전 가이드라인에서 Subclinical organ damage(무증상 장기 손상)라는 용어가 이번 가이드라인에서는 HMOD(Hypertension mediated organ damage, 고혈압이 매개된 장기 손상)라는 용어로 변경됐다. 가장 큰 변화는 경동맥 비대가 위험도 산정에서 삭제되었고, 경동맥 초음파도 거의 권유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경동맥 초음파가 너무 남용되고 그 해석도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고혈압 환자에서 좌심실 비대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어 고혈압성 좌심실 비대의 경우 단순 당뇨병과 비견되는 고위험군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고가의 경동맥 초음파 검사 대신 심전도의 소견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또한 위험 인자의 경우에도 혈중 요산치의 상승, 조기 폐경, 사회경제적 취약층, 맥박수(분당 80회 이상) 등이 새롭게 제시됐다.

이러한 새로운 위험인자를 바탕으로 위험도 산정도 새로 제시되었다. 주 요점은 1기 고혈압군을 좀 더 세분화하여 위험도 및 치료 방침을 제시한 것인데 그 취지는 충분히 동감하나 가이드라인이 가져야 할 간결성을 심각하게 위배하며 너무 복잡한 도표로 정리했기에 과연 임상에서 이러한 도표가 올바르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려된다.

결론적으로 유럽가이드라인이 미국가이드라인과 완전히 배치되는 방향을 설정함에 따라 세계 고혈압 가이드라인은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 중 지난 5월 발표된 대한고혈압학회의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양극단 안에서 비교적 균형을 맞춘 현명한 방향을 설정했다고 자평한다. 이번 발표된 유럽가이드라인의 정식판은 2018년 8월 25일 유럽심장학회의 발표와 동시에 출간될 예정이다. 가을의 대한고혈압학회 학술회의에서는 이번 유럽가이드라인에서 제시된 단일복합제 초기 치료 전략, 고혈압 조절의 혈압 하한선, 좌심실 비대의 임상적 중요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제시할 예정이다.

한편, 스페인 바로셀로나 현지에서 이해영 교수가 전해온 보다 자세한 ESH 가이드라인 리뷰는 의사포털사이트 닥터빌(www.doctorville.co.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이해영 교수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이해영 교수

# 이해영 교수는 보건산업진흥원 및 고혈압사업단 연구원 등을 지내고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대한순환기학회 젊은 연구자상(’04), 대한 지질동맥경화 학회 Best research award(’06), 대한고혈압학회 Best research award(‘09), 대한고혈압학회 제1회 젊은연구자상(’10)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학회 활동으로는 대한심장학회 심부전연구회 회원, 대한내과학회 간행위원,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국제위원회 위원, 대한심장학회 간행위원 등이 있으며 대한내과학회 심부전연구회 및 대한고혈압학회 학술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도움말 =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이해영 교수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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