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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남영동 1985’의 고문을 통해 살펴본 통증기전

입력 2012.10.12 00:00
  • 문형철·첨단한방병원 한의사
남영동1985영화포스터남영동1985영화포스터

부러진 화살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지영 감독이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남영동 1985"라는 영화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고 김근태 의원의 고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고문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파괴시킬 수 있는지, 극중 민주화 운동가 김종태를 통해 집중조명하고 있다. 김종태 역으로 분한 주연 배우 박원상은 "고문 시늉만 내면서도 죽을 것 같았는데, 실제 그분(김근태)이 고문당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을 하니 너무 힘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통증으로 자백을 얻어내는, “고문”

고문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통증’이라는 자극을 통해서 원하는 자백을 얻어내는 과정이다. 통증을 넘어 고통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고문은 몽둥이로 때리기, 송곳으로 찌르기, 불로 지지기 등으로부터 시작해 고춧가루 고문, 물고문, 전기고문 등으로 진화했다.

# 통증의 과정 4단계

통증과정4단계통증과정4단계

단순한 통증의 차원을 넘어서는 고문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인체가 어떻게 통증을 느끼는지 통증의 과정 4단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체가 통증을 느끼는 과정은 ‘통증변환, 통증전달, 통증변조, 통증지각’의 네 단계를 거쳐 통증으로 전달된다. 인체가 통증을 지각하기 위해서는 자율신경종말(peripheral nerve endings)이라는 통증 수용기가 자극돼야 하는데, 이를 ‘통증변환’이라고 한다.

1. 통증변환(transduction)
- 통증변환은 통증이 발생할만한 자극이 있을 때 통각신경 수용기에 활동전위라는 전기자극으로 변환되는 과정이다.
- 발을 밟혔을 때 가해지는 물리적 힘이 통증을 전달하는 전기자극으로 변환되는 것이 통증변환 과정이다.

2. 통증전달(transmission)
- 통증전달은 통증변환으로 활동전위로 바뀐 전기자극이 말초 신경을 따라 척수, 시상하부, 대뇌로 전달되는 과정이다.
- 발을 밟혔을 때 어느 부위가, 얼마나 아픈지를 뇌가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통증전달 과정이다. 이런 통증전달체계에 문제가 생겨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바로 '무통증'이다.

3. 통증변조(modulation)
- 상황과 정도에 따라 통증을 줄이거나 즐기게 될 수도 있다. 통증변조는 통증을 줄이는 중요한 과정이다.
- 전쟁터에서 총 맞은 군인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통증변조과정을 통해 엄청난 통증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전기침치료, 봉약침치료, 웃음치료 등은 모두 통증변조현상을 이용해 통증을 조절하는 치료법이다.

4. 통증지각(perception)
- 통증변환, 통증전달, 통증변조 과정을 거쳐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대뇌가 적절하게 반응하도록 결정하는 과정이 통증지각 단계이다.
- 통증지각 과정을 통해 발을 밟혔다면 빨리 발을 빼려 할 것이고, 뜨거운 컵을 잡았을 때 바로 손을 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돈내기' 게임이었다면 끝까지 참으려 할 것이다.

불로 지지고, 몽둥이로 때리고, 송곳으로 찌르는 강한 물리적 자극은 통증 수용기에서 전기적 변화인 활동전위를 일으키고 이 활동전위가 신경을 타고 대뇌로 전달된다. 이 과정이 통증전달 과정이다. 고문은 이 객관적인 통증변환과 통증지각 단계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해지면 고통이 극대화되면서 시작된다.

# 현대의 고문, 통증자극이 강하면서 고문흔적이 남지 않는 방법으로 변모

영화남영동1985의고문장면스틸컷영화남영동1985의고문장면스틸컷

강한 물리적 자극을 가하는 고문방법은 상처와 흉터를 남기기 때문에 현대의 고문방법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현대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고춧가루 고문, 물고문, 전기고문 등으로 신체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더 강한 통증자극을 주고, 두려움과 공포를 더해서 자백을 얻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특히 ‘전기고문’은 통증의 전 과정에서 모두 사용되는 전기활동(활동전위)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는다. 전압이 높아지면서 감각을 전달하는 감각신경이 손상되고, 움직임을 담당하는 대뇌의 운동영역, 말초의 운동신경 영역이 손상된다. 이런 고문 후유증으로 고 김근태 의원은 보행할 때 균형과 협응력이 떨어진 비정상적인 움직임, 비정상적인 보행이 나타났다. 말년에는 파킨슨병을 진단받았지만 이 또한 고문 후유증에 의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 통증변조 과정을 잘 활용하면, 통증조절/관리도 가능하다!

아무리 고통을 주는 고문이라도 인체는 놀라운 통증변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기전을 발휘한다. 과도하게 강한 통증에 노출되면 인체는 몸 내부에서 천연 마약인 엔돌핀(endorphine), 엔케팔린(encephalin), 다이놀핀(dynorphin)을 분비하여 통증을 줄인다.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전침(전기침치료), 봉약침(벌의 독침을 이용한 치료)은 이러한 강력한 진통기전을 이용한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즉 전침과 봉약침으로 강력한 통증자극을 주면 인체의 뇌간(망양체, 솔기핵 등)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이 세로토닌은 척수후각에서 엔도르핀, 엔케팔린 등을 분비하여 진통효과가 나타나면서 부작용 없이 통증경감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환자 스스로 이러한 통증감소 기전을 활성화할 수도 있다. 웃으면 된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몸 내부에서 천연 마약인 엔도르핀, 엔케팔린 등이 분비돼 천연 진통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고 김대중 대통령, 고 김근태 의원 등이 받은 슬픈 고문의 역사가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반복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면서, 또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하지를 않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꼭 잊지 말자. 웃으면 진통제보다 100배 강력한 천연마약 "엔돌핀, 엔케팔린, 다이놀핀"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글 = 첨단한방병원 문형철 원장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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