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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치료

의사의 고백 ‘나라면 고통스런 치료보다 죽음 택한다’

입력 2012.02.27 17:35
  • 김인숙·의학전문기자

암을 떠올리면 겁부터 덜컥 난다. 고통스런 치료와 말기로 갈수록 희박해지는 생존율, 턱없이 높은 치료비, 완치 후에도 안심할 수 없는 높은 재발률. 이 모든 것을 상쇄하는 기적의 치료법이 나오지 않는 한 암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두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의사에게도 마찬가지다.

의사들도 사람이다. 암에 걸릴 수 있고, 암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암 치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어떨까?
최근 해외 의사들이 내놓은 칼럼과 에세이가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의 자문의인 닥터 마틴 스커(Martin Scurr) 박사는 ‘왜 많은 의사들은 말기암 치료의 고통보다 죽음을 택하는가’를 내용으로 칼럼을 기고했다. 그의 칼럼이 용기 있는 고백일지, 희망을 무너뜨리는 냉정한 조언일지는 글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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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커 박사는 의사는 생명을 위협하는 중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할 때, 그 행동이 결국에는 무의미할 것을 안다고 말했다. 더 불행한 일은 치료가 고통스럽게 이어지면서 환자의 생명이 연장될 수는 있지만, 환자의 삶의 질에 대해서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것.

그는 “다수의 의사들은 자신이 중병에 걸렸을 때는 그런 치료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는 의료계의 오랜 금기이자 공공연한 비밀이었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이 비밀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가정의학과의 켄 머레이 교수에 의해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머레이 교수는 지난 1월 발표된 자신의 에세이에서 “다수의 의사들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생명을 구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리하여 의사들 스스로는 이런 고통과 통증을 느끼지 않으려 한다”고 폭로했다.

스커 박사의 칼럼에 따르면, 의사는 오랜 시간 진료를 통해 췌장암과 같은 병은 생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이미 알고 있다. 췌장암은 상당히 진행된 뒤에 발견되는 일이 흔하고, 발견 후에는 6개월 이내로 사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와 보호자들은 현대의학에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있다.

마틴 스커 박사는 만약 자신이 이와 같은 병에 걸린다면, 통증을 완화해주는 치료 외에 화학요법을 포함한 어떤 치료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차라리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의사는 스커 박사의 칼럼에 대해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며 “다만 이는 말기 췌장암 등 극소수 몇몇 질환에만 해당될 뿐, 모든 암을 비롯한 다른 질환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암치료와 같은 생명이 달린 문제는 한 의사의 고백으로 간단하게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그땐 너무 당황하기보다 좀 더 의연하게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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