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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폐경기 여성의 진실

입력 2011.02.25 00:00
  • 이영진·대구코넬비뇨기과의원 전문의

핸드폰을 냉장고에 둔 채 찾아 다닌다. 시도 때도 없이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른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불안하다. 얼굴이 붉어지고 온 몸이 쑤신다. 이는 모두 폐경기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흔히 여성성의 상실로 간주되는 폐경은 여성으로서의 삶이 끝났다는, 그래서 더 이상 여성도 남성도 아닌 무성(無性)의 삶이 시작된다는 비극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폐경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신호이며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잃어버렸다는 신호이며 원활한 잠자리 또한 불가능할 거라는 신호이다. 게다가 소변을 질금대는 요실금에라도 걸릴라치면 잠자리에 대한 불안은 더더욱 가중된다. 그렇다면 폐경기 여성들은 과연 섹스를 즐길 수 없는 걸까.
폐경은 체내에 있는 성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일어난다. 난포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증가하고 황체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이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것. 폐경 전까지 여성들은 한 달에 한 개씩 난자를 만들어내지만 월경이 중단될 때쯤이면 남아 있는 난자를 소모하기 위해 여러 개의 난자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난포는 많은 활동을 하게 되고 이 때문에 난포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증가하는 것. 반면 프로게스테론이 감소하는 것은 배란에 이를 만큼 성숙한 난자가 생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배란에 관여하는 프로게스테론은 오히려 감소하는 것. 이처럼 두 개의 호르몬에 균형이 깨지면 질벽은 점점 얇아지고 질 건조증은 심해진다. 얇아진 질벽은 작은 충격에도 곧잘 상처를 입고 이로 인해 섹스를 즐길 수 없게 되는 것. 게다가 폐경기에 겪는 심리적 고통 또한 만만치 않다. 안면 홍조 두근거림 골다공증과 같은 육체적 노화는 물론 우울증 기억력 감퇴, 정서 불안, 의욕 상실과 같은 정서적 장애가 수반되면서 매사에 시큰둥하고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섹스를 즐길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폐경기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섹스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폐경기 여성 중 약 10%는 폐경 후 오히려 성적인 자유를 만끽한다. 임신의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생리로 인한 불편함마저 사라져 그만큼 섹스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서 30세~ 40세 여성의 8%, 40세 이상 여성의 10%가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에서 자유로운 폐경기 여성들이 바람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바람기’를 쓴 일본 작가 호리에 다마키는 말한다. “50을 넘기면서 여자들은 두려움이 없어진다. 여자로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바람을 피우려 하고 육체를 탐할 목적으로 접근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폐경기 여성들의 과감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10%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의들은 폐경기에도 꾸준히 부부관계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천천히 부드럽게 섹스를 하다 보면 윤활액이 분비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는 여성들의 경우 골다공증은 물론 스트레스, 피부 노화, 의욕 상실 등 각종 갱년기 증상이 늦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쯔다주쿠 대학 미사코 치즈루 교수는 섹스를 하지 않으면 금세 쭈그렁 할머니가 된다고 말한다. 섹스나 출산을 하지 않으면 내면에 있는 여성 에너지가 분출되지 못해 금세 늙게 된다는 것. 그러나 무엇보다 폐경기 여성들이 섹스를 즐겨야 하는 이유는 점점 길어지고 있는 평균 수명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폐경 연령은 48세, 평균 수명은 79.2세로 통계상 삶의 반환점밖에 되지 않는다. 폐경 이후 섹스를 기피하다 보면 나머지 40년을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남성들 역시 섹스를 하지 않으면 고환 음경 등의 위축과 함께 전립선 질환이나 치매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부부간의 섹스는 중요한 것이다. 인류학자 마거렛 미드는 말한다. ‘여성은 30세에 형성되고 40세에 변화하며 50세에 완성된다.’ 그러니 폐경기인 50세가 돼서야 여성들은 비로소 인생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50이 넘은 아내를 더욱더 사랑하고 챙겨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대구 코넬 비뇨기과 이영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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