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 이희준입니다.
(동일한 질문이 두개 달린 것 같아 동일한 답변 드렸습니다.)
아버님의 음주 문제로 고민하고 계신 마음,
글을 통해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가족의 건강을 걱정하시는 그 마음,
그리고 애정이 가는 대상이 내 뜻대로 변화하지 않을 때 생기는 무력감,
정말 많이 공감됩니다.
우선, 매일 술을 드신다는 건 의학적으로 분명 ‘문제 음주’ 또는 ‘알코올 사용장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거의 매일, 하루에 한 병 반 정도를 마신다는 건
그 자체로 음주 조절이 어려운 상태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술을 얼마나 마시느냐보다도,
그 음주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입니다.
지금처럼 술 이야기를 꺼냈을 때 화를 내거나 예민해지는 모습은
아직 본인이 그 상황을 문제라고 느끼고 있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이걸 정신의학에서는 '문제 인식 이전 단계'라고 부릅니다.
이 단계에서는 가족이 아무리 걱정하고,
잔소리를 하고, 눈물로 호소해도
당사자는 오히려 반발하거나 회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에게는 아직 바꿔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독이라는 것은 단순히 의지 부족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이 뇌와 몸에 각인되어 통제가 어려운 상태'이며 질병입니다.
맹장염 치료를 가족들만의 힘으로 치료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중독 문제는 가족이 애써 해결하기는 어렵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이 꼭 필요한 문제입니다.
다만, 중독 치료는 정신과 전문의에게도 쉽지 않은 영역입니다.
치료 중에 실패가 반복될 수 있고, 그 과정 전체가 치료의 일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번에 술을 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치료 기간도 길고, 인내심이 많이 필요합니다.
음주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만큼 습관도 오래되고, 바꾸기가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가족 입장에서는 너무 걱정이 되다 보니
때론 감정이 앞서게 되고,
말이 거칠어지거나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바로 술을 끊는 경우는 드뭅니다.
오히려 관계만 더 멀어지기도 하죠.
이럴 땐 목표를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당장 술을 끊게 하자'는 목표보다는
조금 더 작은 목표,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일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만이라도 받아보게 하기
'내가 술을 꽤 자주, 꽤 많이 마시고 있구나'를 인정하게 하기
'가족들이 걱정하는 건 이해는 된다'는 정도의 수용을 이끌어내기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치료를 향한 동기가 생기게 됩니다.
또 하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가족들이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무의식적으로 중독을 유지하게 만드는 행동들도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술 마신 다음 날 해장을 챙겨주거나,
취한 걸 수습해주고 대신 사과해주는 행동들이 그 예입니다.
사랑해서 하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술을 마셔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경험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가족으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지치지 않고 천천히, 감정적으로 너무 휘둘리지 않으면서
필요한 정보와 도움의 방향을 계속 제시해주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관심 갖고 방법을 찾고 계신 것 자체가
이미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고,
치료의 문이 열리는 가장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응원합니다. 너무 지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가족 상담부터 시작해보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