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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정관수술’, 돌아오기 어려운 강을 건널 때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입력 2013.12.11 00:00
  • 김태한·태비뇨기과의원 전문의

환자가 의사를 찾아 올 때에는 좋은 치료 결과를 얻기 위해 옵니다. 치료 후 결과를 판정 받을 때에도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의사도 환자에게 좋은 결과를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언제나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30대 환자 K씨에 경우가 그랬습니다. 저희 병원에 찾아와 정관복원수술을 요청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정관수술을 언제 했는지 아이가 몇인지 물어봤더니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도 수술한지 10년이 되었고 아이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내에서 마주보고 대화하는 남녀실내에서 마주보고 대화하는 남녀

더욱더 부담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정관복원수술을 했습니다.
정관복원수술은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수술이고 의사들이 특별한 사명감을 갖지 않고서는 기피하는 수술입니다. 해당 분야에 명성이 높다 해도 모든 수술이 100%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정관복원수술은 결찰되어 기능을 잃은 정관의 일부를 절제해 내고 건강한 정관끼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느다란 실로 봉합을 해주는 수술입니다. 수술 과정도 섬세한 기술을 요구하지만 수술 후 봉합한 부위가 아무는 과정에서 내부에 흉터조직(섬유화 조직)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머리카락 하나가 통과할 만한 가느다란 정관내경에 아주 작은 섬유화 조직이라도 생기면 정자가 통과할 통로는 없어지고 맙니다.

정관복원수술은 세상에 잘못 알려져 있는 것처럼 마치 묶인 줄을 풀어주는 간단한 수술은 아닙니다.
정관절제수술을 하고 나서 시간이 오래 경과될수록 고환의 정자 생성 능력도 저하되기 때문에 정관절제 수술 후 10년이 되었다면 정자가 활발하게 나타날 확률은 절반 이하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환자의 정관복원수술 중에 확인한 결과 절단된 정관부위에서 정자를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환자의 수술 결과는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나서 시행한 정액 결과에서 불행히도 정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관복원수술의 특성상 모든 환자에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지만 의사의 입장에서 실망하는 환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1년이 흐른 뒤 이 환자가 다시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한번 더 정액검사를 받고 싶어서였습니다. 다행히도 정액검사결과 건장한 정자가 충분한 운동성과 수량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환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나자 환자가 그때서야 숨겨진 내력을 이야기 해줍니다.
이 환자는 10년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와 동거를 결심하고 여자친구는 아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자신의 사랑과 여자친구를 위하는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가까운 비뇨기과에 가서 아이가 있다고 속이고 정관절제수술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 후 여자 친구와는 헤어지게 되고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몸이 걱정스러워 정관복원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환자는 막혀있던 정관이 개통되고 고환의 정자 생성 기능이 회복돼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모든 환자들이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료를 하다 보면 아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정에 의해서 혹은 수년간 한시적 피임을 위해 정관절제수술을 해달라고 오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정관절제수술 후 복원이 되지 않을 가능성을 설명해 주고 되돌려 보내기는 하지만 이런 분들이 다른 병원에 가서라도 사정을 숨기고 수술을 받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과거 가족계획을 정부에서 권장하던 시절에는 정관을 단순하게 묶어 놓고 시간이 지나 아이를 다시 갖고 싶으면 푸는 매우 쉬운 일인 것처럼 잘못 홍보됐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잔재가 아직도 남아서 경솔하게 수술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수술이 아니더라도 수년간 혹은 원하는 기간 동안 피임이 되는 방법들이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성이 피하에 피임제 주사를 맞아 3년간 피임을 유지하는 방법 또는 자궁 내에 피임기구 등을 사용하는 방법들로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피임법입니다. 간혹 남성들이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이기 위해 혹은 남자다움을 보이기 위해 정관절제수술을 선택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여성을 위하는 일일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자신을 위한 일은 아닙니다.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데 가질 수 있는 아이를 미리 포기하는 경솔한 행동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잃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으로 살아서 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것은 가장 큰 소망 중에 하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 = 태비뇨기과 김태한 원장 (비뇨기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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